'COLUMN : Between 0 and 1 (0과1 사이)'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10.04 형식미와 파괴미 (2011. 2월호) (6)
  2. 2011.09.30 미래적 사고, 세련미 (3)
  3. 2011.03.01 인류의 미래 (1)
  4. 2011.02.17 인사 그리고 꿈 (4)

2011년 1월호부터 월간 Ue(Unite Earth) Magazine에 연재된 '0과1 사이'는 디지털화 시대의 0/1 아니오/예 off/on 식 이분법적 사고가 잡아내지 못하는 그 사이의 세계 -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정신세계 - 와 그것을 담고 있는 인간성(Humanity)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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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악은 무엇인가? 좋은 예술 작품은 무엇인가? 머릿속으로 늘 생각하고 마음의 눈으로 항상 바라보려 노력하는 주제이다. 


축구나 농구 격투기 등 스포츠에는 규칙, 룰이 있고 경기장의 규격, 선수들의 복장 규정 등과 같은 형식이 정해져 있다. 만약 이 규칙을 어긴다면 제재를 당하고 심하면 경기 자체가 아예 무산되는 수도 있다. (농구선수가 실수로 자기 여자친구 발레복을 입고 경기장에 온다면? 출장정지는 물론이고 폭력적인 나라에선 감독한테 귓방맹이를 후려 맞는다.) 

그렇지만 음악이나 영화, 미술, 패션 등 예술의 세계는 스포츠와 다르게 규칙이나 룰을 어긴다고 해서 성립이 인정되지 않거나 고막이 터지는 일은 없다. 아주 유명한 일화인 존 케이지의 '4분33초'퍼포먼스를 생각해보자. 음악공연에 관객을 불러다놓고 4분 33초간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기행을 선보였음에도 '고정관념의 해체' 라든지 '연주자의 일방적 연주 뿐만 아니라 관객의 소음이나 존재, 분위기도 공연의 일부임을 일깨우는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받지 않는가. 


이처럼 예술은 규칙과 형식을 지키는 것만이 아닌 규칙을 깨는 것이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지난해 귀국 직후 가진 '인디펜던트 아티스트의 길' 이라는 강의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예술은 멋있게 틀리는 것이다' 라고 열심히 강조했는데 이 역시 규칙을 깨는것의 미학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적어도 예술의 세계에서는 규칙을 완벽하게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아주 높은 경지에 올라갈 수 없다. 

딸딸 외우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학업 성취도를 높일 수 있으나 그 이상이 되려면 외우기만 하는 능력으로는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한국사회에 예술 저변이 얕은 것일까? 교사의 질문에 정답이 아닐까봐 아무 대답도 안하고 서있는 학생이나, 뭔가 엉뚱한 대답하면 틀렸다고 면박주는 선생이나…관습적으로 뻔한 내용의 대중문화를 내보내는 문화 공급자와 그걸 못쫓아가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여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자 등 이러한 비일비재한 현실이 다 '정답 맞추기'에 급급한 문화의 반영들이다. 이래서는 창조적이 될 수 없다. 창조적이 되려면 규칙을 깨는 파괴미가 필요하다.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틀을 깨야 더 크고 넓은 사람이 될 수 있듯이. 알을 깨는 아픔이 있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듯이. 이 아픔의 이름은 파괴미 이다. 파괴미에서 독창성이란 꽃이 핀다 .


그러면 이번엔 형식미를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한국에서 알엔비 가수라고 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다가 '어? 이게 알엔비야?' 하고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왜냐면 딱잘라 정해진 것은 아니어도 알엔비라고 하는 장르를 규정짓는 형식적 요소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들이 너무나 많이 빠져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소위 뽕끼 라고 하는 한국식(이것 역시 일본에서 가져와 변형시킨) 멜로디로 버무려져 있는데 이를 알엔비라고 부르는 언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슨 알엔비 공식이 있는건 아니어도 오리지널 알엔비의 대부분에서 캐치할 수 있는 코드 진행이라든가 드럼의 리듬과 질감, 가사의 운율과 정서가 담겨있지 않은데도 알엔비라고 부른다면 뭔가 다른 장삿속이 있다는 찝찝한 의심을 하게 된다. 일본 여행을 할때 편의점에서 김치를 사먹었는데 소금물에 절이지도 않은 듯한 배추에 매운맛은 별로 없고 단맛이 가미된 괴이한 맛이 났을때 이건 차마 김치라 부를 수가 없겠구나 싶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국식 알엔비 라고 부르더라도 일단은 '알엔비' 여야 '한국식' 이라는 수식을 앞에 붙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일본식' 이란 말을 앞에 붙인다고 해서 김치가 단맛 나는 배추절임으로 바뀐다면 엄밀히 말해서는 비겁한 사기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느정도의 엄밀함 마저 없는 상태를 우리는 '엉망진창' 이라고 부른다. 화장실과 부엌이 한곳에서 섞여 뒹구는 엉망진창 속에서 살지 않으려면 '김치'와 '단배추절임', '알엔비'와 '가요'를 구별해서 이름 붙이는 것이 원형과 변형을 둘 다 살리는 길일 것이다. 오랜시간에 걸쳐 다듬어지고 형상이 잡힌 틀의 이름은 바로 형식미 이다. 잘 갖추어진 형식미에서 정통성이 드러난다.


예술은 형식미와 파괴미, 정통성과 독창성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황금비를 잘 살려내는 것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길이다. 모범생이기만 하면 답답하고 날라리이기만 하면 부담스럽다. 그러나 예의바르고 마음씨 고와서 가까이 하게 된 여성이 어느날 뇌쇄적이고 섹시한 매력을 풍긴다면 거기에 안넘어갈 남자가 있을까? 날라리 인줄만 알았던 남자가 알고보니 지극한 효자인데다가 근사하게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경제학도라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매력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싶어지지 않을까? 엘리트 코스만 밟고 살아온 부잣집 도련님이 진심어린 뜨거운 마음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개혁에 앞장선다면 훨씬 더 멋있고 귀중하게 보이지 않을까? 이와 같이 예술 작품이 주는 감동보다도 훨씬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 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삶 그 자체가 어떤 예술보다도 더 예술적이라는 의미. 예술도 결국은 인간의 삶을 모방하고 축소한 하나의 단면이므로, 역설적이지만 인간의 '삶' 본연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참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술을 모방하여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글을 쓰는 동안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들,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들이 떠오르고 어떤 정신이 스믈스믈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때 갑자기 방향감각을 잃고 아득하기만 할때에 예술을 모방하는 삶의 방식을 통해 내 삶이 예술이 되도록 해야겠다.


"White collar conservative flashin' down the street, pointing that plastic finger at me, they all assume my kind will drop and die, but I'm gonna wave my freak flag high."                      - Jimi Hendrix -           If 6 was 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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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적 사고 : 듀얼 사고]


예/아니오, 0 아니면 1 로 표현하는 방식이 디지털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컴퓨터요 로봇, 기계이다. 이들과 차별되는 인간 고유의 성질이 바로 '모른다' 혹은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거 저거 다 싫다'… 고 하는 즉, 0과1 사이를 마음껏 거닐 수 있는 능력인데 어쩐 일인지 21세기라는 첨단 시대에 사는 우리는 둘중 하나를 선택하는 디지털적인 사고에 점점 더 익숙해져만 가는 것 같다. 정치적으로 진보냐 보수냐? 물질주의냐 자연주의냐? 음악 취향이 대중이냐 마니아냐? 현실이냐 이상이냐? 예술이냐 외설이냐? 알게 모르게 우리는 두 진영으로 짜여진 프레임 속에서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보다 진보된 인류의 사고방식이라면 단순히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을 뛰어 넘어서 두 극단을 모두 이해할 줄 하고 그 안에서 위치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그래야만 우리 실수 투성이 인간들끼리 전쟁과 증오를 딛고서 서로 감싸안고 용서하며 유쾌하게 (쉽게 말해 안 빡쎄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세련미]


세련됐다는 말을 할때 쓰는 '세련'이란 단어는 '세밀하게 연마된'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화려한 것이 세련이 아니라 섬세하게 다듬는 훈련속에 꽃핀 세심함이 바로 세련미 라는 것이다. 다 똑같아 보이는 검은 양복의 가격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 나는 이유가 바로 티끌만한 디테일의 차이 때문임을 생각한다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선진국에 대한 목표를 향해 만사 제끼고 국가차원으로 달려온 이 나라가 세련된 시민들의 나라라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못주는 이유는 아마도 효율 위주의 예/아니오 식 사고방식의 단순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우리 아버지는 내가 청바지 하나 사는데 몇시간을 고민하는 것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신다. 아버지에게는 원하는 청바지의 색상, 가격을 고려하여 선택하면 그만인 문제이지만 나한테는 바지 밑위 길이, 실의 색깔, 허벅지 통과 발목 통, 워싱 무늬, 뻣뻣한 정도, 내가 가진 신발들과의 궁합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단순한 분이신가 하면 평양냉면에 관해선 최대한의 오리지널리티와 즐거움을 찾아 까다로운 선택을 하시는 분인 것을 보아, 이 사례를 다른 분야에 적용해보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이 세계가 각자의 세련도에 따라 예/아니오의 양자택일이 될 수도 있고 그 안에 무한한 우주를 담을 수도 있다는 개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외부조건이 아닌 내부조건에 따라 우리의 체험이 달라진다는 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필자의 직업이 0과1사이를 끊임없이 잘게 쪼개고 관찰하여 그 안에서 새롭고 재밌고 감동적인 영감들을 꺼내고 다듬고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음악가인 만큼, 생활에 바뻐서, 현실에 치여서 기계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섬세한 안목과 감각을 되찾을 수 있는 뇌/마음 마사지를 해드릴 예정이니 앞으로 필자와 함께 0과1 사이에 놓인 상상력의 바다를 아무쪼록 끝까지 항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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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


칼 세이건, H.G. Wells 등 고전(classic) SF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 중 '인간이 창조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 에 관한 것이 오늘날 만큼 생활에서 밀접하게 느껴진 적이 있을까? 거창한 말로 시작했지만 "인터넷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서 취업이 안되니 어떡하면 좋아~" 라는 어머니의 푸념속에 오늘날 현대 인류의 깊은 고민이 이미 들어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려진 '디지털 세계(매트릭스)에 접속된채 인큐베이터에서 자고 있는 누에고치 인간들' 의 섬뜩한 모습이 단지 영화적인 상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1999년에 출간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책 [The Age of Spiritual Machines] 에서 전하는 미래의 모습을 요약해 옮겨왔다. 11년전 책에서 오늘자 과학면에서 보일 법한 단어들을 발견하는 것 또한 유용한 재미.


2019 

- $1000 짜리 컴퓨터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에 거의 맞먹는다.

- 모든 컴퓨터의 지능의 합이 모든 인간의 지능의 합에 맞먹게 된다.

- 가구, 보석, 벽, 옷 등 모든 곳에 컵퓨터가 삽입된다. 

- 컴퓨터는 형태의 제약을 벗어나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게 되고(예를 들어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하나 이상의 컴퓨터를 갖게 된다.

- 전선으로 연결된 컴퓨터가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고 좁쌀만한 카메라가 사방에 설치된다.

- 3D 콘택트 렌즈/안경 과 헤드셋 등으로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키보드 대신 말과 몸짓으로 컴퓨터와 소통이 가능해진다.

- 시각장애인들은 '보정된 가상현실' 을 통해 시각화된 현실을 경험하고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이미지 혹은 텍스트로 변환시켜주는 기술을 통해 보정된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 나노 테크놀로지가 특수한 분야부터 사용되기 시작한다.

- 대부분의 교육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은 직접 가르치는 대신 조언자나 멘토 등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이 또한 대부분 원격으로 이루어진다.

- 학생들은 여전히 함께 공부하고 교우관계를 맺지만 이는 대개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진다.

- 노동자(직장인)들은 대개의 시간을 컴퓨터를 통한 기술/지식 학습에 할애한다.

- 하반신 마비자들은 신경자극 컴퓨터 시스템과 인공골격 기술의 도움으로 걸을 수 있게 된다.

-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섬유 등의 기술 발전으로 가상체험이나 가상섹스가 가능하다. 

- 사람과 '컴퓨터 상인' 또는 '컴퓨터 인격(아바타)' 대 '컴퓨터 인격(아바타)' 사이의 상행위가 대세가 된다.

- 대부분의 운전은 컴퓨터가 한다. 고속도로에서는 컴퓨터 운전의 도움 없이 할 수 없게 되고 이에 따라 교통사고는 거의 없어진다.

- 사람들은 '만들어진 컴퓨터 인격'과 보다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 의료기구와의 결합 등 사람과 로봇과의 결합이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 예술 각 분야에서 '가상 예술인' 들이 생겨나고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2029

- $1000 짜리 컴퓨터의 지능이 인간 지능의 1000배가 됨.

- 컴퓨터 이식 기술의 발달로 인해 안경/렌즈 헤드셋 등이 쓸모없어진다. 즉 이식이 보편화 되며 뇌와의 직접 연결도 가능해진다.

- 컴퓨터 스스로가 학습을 하고 이해하며 어떤 컴퓨터들은 말그대로 세상 모든 정보를 다 알 수 있다.

- 뇌에 컴퓨터를 이식한 사람들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며 이는 보편적인 기술이 된다.

- 제조업, 농업, 운송업 등은 자동화 되어 인간이 거의 종사하지 않게 되고, 이러한 기술발전에 의해 빈곤 전쟁 질병 등의 문제가 거의 사라지게 된다.

- 대부분의 소통은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인간 대 기계 사이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 인공지능들은 '로봇권리' 를 주창하고 이를 위한 법적 근거나 사회장치 등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 컴퓨터들이 튜링테스트(컴퓨터가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를 주기적으로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과연 전 영역에서 인간보다 우수한가에 대한 논란을 낳는다.

- 인공지능에 의식이 있음이 공식화되고, 사람들은 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 비생물 인공지능이 인간의 미묘함과 패턴지각능력을 속도나 용량 지식 면에서 동등하게 갖게 된다. 


2049

- 음식은 대부분 나노기술에 의해 원자 단위로 가공되어 '천연 음식' 과 구별할 수 없게 되며, 생산량이 자연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되고 영양가를 높이는 등의 개량이 가능해진다.

- 식용을 위한 도축이 필요없게 된다.  

- 가상현실과 진짜현실을 혼동하게 되며 foglet(가상현실 재현장치)의 보편적 사용으로 모든 물리적인 물체들을 조합/해체 할 수 있게 된다.


2072

- 피코엔지니어링(1조 분의 1미터의 공학)이 가능해진다.


2099

- 뇌의 모든 기능이 밝혀지고 뇌기능의 모든면을 알게 된다.

- 기계가 인간과 동등한 법률적 지위를 갖게 된다.

- 인간과 기계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합쳐지고 뇌에 들어가는 임플란트에 의해 인공지능과 접속 된다.

- 네트워크 이곳저곳을 이동하고 접속하는 인공지능의 개채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이들은 물리적 세계에서도 로봇 몸체를 만들고 하나의 인공지능이 여러개의 몸체를 통제할 수 있다. 

- 의식을 '성형' 할 수 있게 되고 존재끼리 서로의 의식을 넘나들 수 있게 됨에 따라 '자아 정체성' 이라는 개념이 쪼개진다.

- 인간(대부분 인공지능 이식을 했겠지만)은 소수종으로 남게 되고 따로 모여 주류 네트워크에서 찾기 어려워지게 된다.

- 천연인간은 멸종으로부터 보호받게 되고, 그들의 단점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기계를 일어서게 한 공로로 기계들로부터 존중을 받는다.

- 펨토엔지니어링(1천조 분의 1미터 공학)이 가능해진다.

- 인공지능에 의한 미술, 음악은 인간이 체험하지 못하는 영역의 빛 스펙트럼과 음파 스펙트럼을 이용한다.

- 인공지능이 백업을 통해 '불멸' 하게 된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이란 개념이 없어진다. 


[출처 : wikipedia.com]

 

와와 놀라운 얘기들이다. 우리 생애에 인간이 다른존재로 대체되는 현실이라니!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 대신 '아니 벌어질 미래가 괜히 상상되랴?' 라는 속담이 나올 법 하다. 

자 그러니까 나노테크널리지 라는 것이 우리의 인식 능력 보다 훨씬 작은 단위에서의 기계/로봇 제어기술을 말하는 것이니까 이것이 보편적 기술이 되는 시점이 되면 이 시나리오대로 가지 말란 법이 없다. 


10년전과 비교해서 요즘의 지하철이나 버스 풍경을 보면 너나 할것 없이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눈으로는 단말기를 쳐다보고 있다. 데이트하는 커플도 서로 각자의 단말기를 바라보고 있다. 옆에 있는 사람과의 시덥지 않은 잡담 보다는 그보다도 더 시덥지 않은 어플 게임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이 마음 편한 사회, 함꼐 있어도 함께 있는 것이 아닌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런 인식 끝에 뭔가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있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과감하게 시도하시고 그 경험을 함꼐 나눠주시길!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용자를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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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1 사이: Between 0 and 1] by J.H.Hahn 


[인사 그리고 꿈]


0과1 사이의 깊은 심연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필자는 과연 누구인가 궁금해하시는 분들에게 간단히 소개 겸 인사를 드리며 첫 글머리를 열까 한다.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들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높은 존재, 높은 세계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탐험으로, 이제는 '소리'를 가지고 언어와 문화의 벽을 뛰어넘는 음악/예술에 대한 탐구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한국 언더그라운드에서 알엔비, 소울, 힙합 음악을 하다가 그 본토인 미국 LA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아티스트/프로듀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니네를 보면 꿈을 현실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는 지인의 근사한 덕담을 안떠올릴 수 가 없다. 꿈을 현실로 산다는 말, 몇번을 곱씹어도 기분 좋고 마음이 꽉차는 말이다. 자기의 꿈을 현실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꿈? 글쎄…뭐…그냥 먹고사는 걱정 안하고 적당히 지위도 괜찮고.." 라는 반응을 보여서 필자에게 허무함을 준 사람도 꽤 있다. 또는 본인의 꿈을 외면한채 현실에 매진하는 사람들, 꿈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아 분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나는 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꿈이란 무엇인가? 잠잘때 꾸는 꿈도 꿈이고, 우리의 희망이나 바램도 꿈이다. 지켜나가고 싶은 신념이나 가치를 표현 할때도 꿈이라는 말을 쓴다. 이들을 종합해서 생각해본다면 우리 마음 속 '상상의 세계'를 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눈을 감으면 내면에 나타는 세계, 다른 차원, 평행 우주, 환상… 뭐라고 부르던 그것은 우리의 감각과 인식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는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니 꿈은 억대연봉 같은 현세적인 것이 아닌 '남들 눈엔 슈렉인 여자가 내눈엔 공주로 보이는 세상'에 더 가깝다. 또한 정복해야할 과제나 달리기 성적이 아닌 하고 싶은 과제, 내가 달리는 기분이나 길의 방향에 더 가깝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는 것처럼 꿈을 꾸면 삶이 꿈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우리 마음 속 상상의 세계를 꿈이라고 했으니 현실세계는 우리가 마음속에 품는 상상에 영향을 받으며 닮아나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말처럼 "근사한 상상을 하는 사람 눈에는 현실의 근사한 면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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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활동하고 있음.

* 이 칼럼은 국제아동돕기연합에서 발행하는 잡지 Unite Earth 에 연재되고 있으며 본 내용은 1월호 기사.

* 홈페이지 :www.uniteeart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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